1906년 예천군의 동로면과 화장면이 문경군에 편입되었고, 상주군의 산서· 1910년간 숫자분류문서철: 1906년 미 국무부는 형식과 출처에 따른 서한분류작업을 중지했음. 중앙(Central)이라는 말이 의미하듯이 이는 미 국무부 문서의 중심 또는 기본문서철을 뜻한다. RG 59에 수장된 국무부 문서의 약 12% 정도가 비중앙문서철 기록물이다. 중앙문서철은 전체 문서의 약 82% 이상을 점하고 있으며 외교사가들이 가장 광범하게 이용하는 기록물이다. 저자가 전장을 방문하였을 당시 직접 그렸거나, 이후에 사진 및 보고서를 바탕으로 그린 스케치와 지도들을 보고, 이들에서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이 문서를 연구하는 가장 큰 즐거움중의 하나이다. 1) 중앙문서철 미 국무부 기록 중 가장 방대하고 가장 중요한 범주가 바로 중앙문서철(Central File)이다. 미국정부는 1953년 8월 미국공보원(USIA)을 기존 국무부 산하의 선전기구들을 통폐합되면서 설치하였다. 미공보원(USIA)은 미국의 대외정책을 둘러싼 외국에서의 여론과 관련하여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각 부처와 해외공관에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미국정부의 해외정책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데 기관의 목적이 있었다. 강제이주와 관련하여 흥미를 끄는 문서(Fond П-2, opis’ 1, delo 1344, ll. Fond 1718에는 1930년, 1931년에 작성된 극동각지역의 지도들이 들어 있다. 비중앙문서철의 상당수는, 예를 들어 여권과와 같은 국무부의 행정부서 혹은 지원부서에서 작성된 것들이다.

을 뜻함. (2) 비중앙문서철 기록물 혹은 특수문서철 이 기록물들은 미 국무부의 국(Office) 단위에서 생산했거나 특수 주제·목적과 관련해 철해진 자료들을 말한다. 한국현대사 관련 외교문서가 집중된 곳이 바로 RG 59이다. 그런데 미 국무부의 문서분류체제는 독특한 것으로 적절한 설명이 필요하다. 대전오피 304에 포함된 두 문서는 1929-1933년에 걸쳐 소련당국이 계획했던 한인들의 하바로브스크지방으로의 이주 5개년계획에 관한 것으로 강제이주전에 극동지방 행정당국이 한인들의 자발적인 이주를 시도한 것으로서 주목해야할 문건이다. 이들 문서는 출발시점, 출발지점, 인원수 등 구체적인 이주방법과 상실한 재산에 대한 보상방법 등이 명시하고 있다. 계원의 이름과 자, 생년 등이 기재되어 있고 계에서 탈퇴한 년도가 기재되어 있다. 을축(1805)안:權贊羽 외 33명의 명단만 기재되어 있다.乙巳(1785)案:權是羽 외 33명의 명단과 還入한 4명의 명단, 그리고 甲子(1744)案의 절목과 같은 내용의 절목이 기재되어 있다. 2) 新安影堂瞻謁錄 임오(1822)년부터 기미(1859)년까지 신안영당에 瞻謁(참배)한 사람들의 명단으로 중간에 기재되지 않은 해도 있다. 중화민국시기에 생산된 외교부당안 가운데 보존기한이 지나지 않은 당안자료와 기밀자료는 臺北 외곽의 北投에 위치한 外交部檔案庫에 별도로 수장. 국사관대만문헌관 소장 중요 자료는 臺灣總督府檔案, 臺灣總督府專賣局檔案, 臺灣拓殖株式會社檔案, 臺灣省行政長官公署檔案, 臺灣省級機關檔案, 臺灣鹽業檔案 등으로 일제시기 대만의 사회·

외교관련 문건 가운데 총리각국사무아문(1860-1901), 청말 외무부(1901-1912), 북양정부 외교부(1912-1928) 檔案은 여러 경로를 거쳐 현재는 臺北 외곽의 南港에 위치한 중앙연구원 근대사연구소 당안관에 소장. 중화민국시기의 외교부당안(1930년 이후) 중 기밀이 해제되었거나 보존기한이 지난 자료들은 臺北와 인접한 新店市에 위치한 國史館으로 이전. 1958년 民政廳, 1997년 7월 文化處에 예속되었던 대만성문헌위원회는 1999년 7월 대만성정부에 직속되었다가 2002년 1월 1일자로 국사관에 예속되어‘國史館臺灣文獻館’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성립 다음해인 1949년 7월 대만성통지관은 臺灣省文獻委員會로 개조되었으며 이 기구는 문헌연구 외에도 編纂組, 採集組 및 整理組를 두고 대만관련 문헌사료의 채집, 정리, 수장, 문헌서간의 출판 및 史志의 纂修 등 업무를 담당하였다. 1860년 중국역사상 최초의 외교전담기구인 總理各國事務衙門이 성립된 이후 중국(중화민국) 외교자료의 대부분은 臺灣의 각 사료소장기구에 분산 소장. 이 기록물은 특정 행정기구·

1906년부터 중앙문서철을 위해 고안된 숫자분류체제에 따라 특정 주제· 조직단위 혹은 특정 주제· 또한 Fond П-442의 문서들은 볼셰비키 하바로프스크 시당위원회 서기와 하바로프스크 소비에트 외무위원을 지낸 최초의 한인공산주의자 김 알렉산드라 스탄케비치(1885-1918)에 대한 채마리아 페트르바나, 김마트베이 등의 기록 등이 포함되어있고, 상해파 고려공산당의 핵심간부로서 이동휘의 측근이기도 했던 김아파나시와 관련된 문서들을 다루고 있으며, Fond 58, Fond 99, Fond 137, Fond 353, Fond 768의 문서들은 거의 20년대 자료들로서, 한인의 사회주의 건설 참여, 교육, 농업, 토지이용, 출판, 하바로프스크 지역별 정착한인수, 당국의 한인 지역배치, 거주증 및 시민권취득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 문서들을 Office File 혹은 Lot File, 혹은 특수문서철(Special Files)이라고 부른다. RG 59의 문서들은 두 개의 주요 그룹, 즉 중앙문서철 기록물(Central File Records)과 비중앙문서철(혹은 특수문서철) 기록물(Records filed outside the Central File or Special Files)로 나뉜다. 이후 그는 부산대학교, 국제신보 부산일보 등 주요 지역언론사, 민족문화협회 등을 기반으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미국의 소리를 운용하는 방송과(Broadcasting Service), 미국의 도서 보급, 전시회 개최, 영어 교육 등을 지원하는 공보원과(Information Center Service), 영화텔레비전과(Motion and Television Service), 신문출판물과(Press and Publications Service)를 두었다. 고종 28년(1891)에는 현감 李承遠이 성전에 부임하여 배알한 후 월급을 내어놓고 유림들에게 모금한 1,500金을 가지고 동서재와 풍화루, 양현, 전사 등을 수리하였으며, 제기와 제복도 새롭게 마련하였다. 상주는 경주와 함께 경상도를 대표하는 도시였으며 상주목으로 여러 속현을 거느렸고 1914년까지도 상주군과 함창군이 병존한 지역으로 작년에는 1차로 옛 함창군 지역(함창읍 공검면 이안면)이 속하는 1읍 8면 2동의 11개 읍면동으로 상주시의 동부와 북부지역이었다.